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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3/23 05:12 (1274)   어린 가섭의 어머니

선생님!

 

아이 때문에 살기가 싫어요.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는데도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밖으로만 나돌아 다녀요. 얼마 전에는 학교에서 옆의 아이를 심하게 때려서 정학처분까지 받았어요. 그 후부터 아예 학교를 가지 않으려고 하고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려 다녀요. 아이가 조금만 늦게 들어와도 걱정이 되어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차라리 외국으로 이민을 갈까봐요."


 

이렇게 말하는 어머니의 얼굴에은 주름살 만큼이나 깊은 수심의 그림자가 가득 찼다. 이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아들은 원래는 착하고 순종적이었다고 한다. 특히 첫딸을 낳는 지 5년 만에 본 외아들이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지나치리 만큼 아들을 아끼고 사랑하였다.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야 되겠다는 일념으로 어릴 때부터 과외공부도 열심히 시켰고, 학교도 사립학교를 보냈다. 과연 아이는 이러한 어머니의 심정을 아는지 국민학교에 들어가서는 공부도 잘하고 반장을 도맡아놓고 했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몰랐다. 마치 아들이 자신의 인생의 목표인 것처럼 여겨져서 아이를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그 전까지는 공부 밖에 모르던 아들이 어느날 하루는 "엄마! 공부 못하는 아이들에게도 배울 것이 많아요. 그 아이들은 친구간의 의리를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하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서서히 공부를 소홀히 하고 불량한 아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더니 1,2등을 다투던 성적이 고등학생이 되면서 거의 끝등까지 떨어지다가 드디어 정학처분까지 받게 되었던 것이다. 오직 아들만을 의지해서 살아온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슬픔이었다.

 

 "선생님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아요. 내가 그토록 정성을 기울여 키웠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을까요?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아이를 너무 엄하게만 키웠던 같아요. 너무 기대가 크다 보니까 아이가 말을 잘 듣고 공부를 잘 할 때는 그렇게 귀여워하다가 한번 빗나가기 시작하니까 실망 때문에 심하게 꾸중을 하고 때리기까지 하였더니 그것이 오히려 역효과였던 같아요."

 

다시 어머니가 울먹이기 시작한다. 이와같이 처음에는 잘하던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와서 적응을 잘 하지 못하는 경우를 가끔 본다. 그런 아이들 중에는 어머니들이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뒤를 밀어 주던 아이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와서도 여전히 인정을 받고, 공부도 잘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가 막상 그렇게 되지 않을 경우에는 당황하고 또 열등감을 느끼는 것 같다.

 

사실 청소년시기 만큼 자존심을 갖는 것이 중요한 시기가 없다. 만약 이 시기에 자존심이 무너지고 열등감을 느끼게 되면 그들은 반드시 다른 곳에서 보충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아예 공부를 포기하고 밤을 새워서 컴퓨터통신 같은 데에 빠지거나, 어떤 경우는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비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런데 대개 아이가 이런 모습을 보이게 되면, 어머니 입장에서는 실망감 때문에 자꾸 아이를 비난하거나 꾸중을 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서로의 사이가 더욱 나빠지게 된다. 마치 사랑이 변하여 미움이 된다는 식으로 이전까지의 기대가 크면 클수록 실망도 커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는 그것 때문에 불만이 쌓여서 반항을 하게 되고, 부모 입장에서는 더욱 화가 나서 꾸중을 하거나 때리게 됨으로써 일종의 악순환이 거듭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 스스로 아이에 대한 지나친 기대나 욕심을 버려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의 집착 가운데 어머니가 자식에 대하여 갖는 집착만큼 극복하기 어려운 것도 업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단적인 예를 법구경에 나오는 '어린가섭의 어머니'에게서 찾을 수가 있다.

 

어떤 젊은 부인이 남편에게 어렵게 허락을 받고 비구니가 되기 위하여 집을 나섰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이 부인은 이미 출가 전에 임신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우여곡절 끝에 부처님 교단에 받아들여져서 비구니가 되지만, 아들을 낳자마자 바사익 국와의 양자로 보내게 되었는데 그의 이름을 어린가섭(구마라가섭)이라고 하였다. 이 어린가섭이 일곱 살이 되었을 때에 그는 자기 어머니가 비구니인 것을 아고 부처님 교단으로 들어가서 20세에 정식으로 비구가 되었다. 그 후 부처님이 정해 주시는 수행주제를 가지고 숲 속에 들어가서 부지런히 정진하여 마침내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 후로 12년 간을 그대로 숲 속에서 살았다.

 

그런데 이 어린가섭의 어머니인 비구니는 12년 동안이나 아들을 보지 못하자 아들이 보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 되었다. 어느날 비구니는 아들이 수행하고 있는 곳을 찾아갔고, 거기에서 아들을 만나자 그 뒤를 쫒아가서 울면서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어린가섭은 어머니가 자기에 대해 애착이 깊은 것을 느끼고 '만약에 내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상대해 드리면 어머니는 계속해서 나에 대해 집착할 것이며, 이로 인해 어머니의 장래는 가련하게 될 뿐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일부러 단호하고 차갑게 말했다.

 

"비구니로서 이 무슨 꼴입니까? 아직도 아들에 대한 애착을 끊지 못하셨단 말입니까?"

 

아들의 이 같은 호통에 어머니는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물었다. "지금 도대체 무어라고 말했느냐?" 어린가섭은 방금 한 말을 되풀이 하였다. 비구니 어머니는 아들의 대답을 확인하고는 큰 비탄에 빠져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 나는 아들을 그리워하며 12년 동안을 눈물로 살아왔는데, 내 아들은 나를 이토록 차갑게 대하는구나. 이런 자식에 대해 내가 애착한들 무슨 이익이 있겄는가? 자식이란 모름지기 의지할 바가 되지 못하는 줄 나는 이제 알겠다."

 

그녀는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자기를 돌아보게 되었고, 마침내 자식에게 애착하는 것이 참으로 부질없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후 그녀는 부끄러움을 느끼고 열심히 수행하여 자식에 대한 모든 애착을 끊으리라 결심하였다. 이같은 굳은 결심을 바탕으로 열심히 수행한 끝에 그녀는 결국 아라한의 경지를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흔히 자식에 대한 기대가 지나치다 보면 이와 같이 애정을 넘어서 집착으로 변하는 수가 많다. 그러나 지식은 결코 부모의 소유물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어릴 때는 부모의 욕심이 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이는 자람에 따라 그것을 간섭으로 여기고 반발하게 되는 것이다.

 

진정으로 자식을 생각한다면 비록 자기가 낳은 아이라 할지라도, 자신에게 잠깐 맡겨진 부처님의 자식을 키운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식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극복하고, 어떤 것이 진정으로 자식을 위하는 길인가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거식증(Anorexia Nervosa) - 코리아 타임즈 2013년 1월 18일자에 실린 글
마음이 만난 자리(아름다운 동행 기고글)